세상과 나

세상과 나, 제1부, <세상, 나>

알마자야 2007. 8. 7. 13:53

 

 

세상과 나 <제1부>

 

1. 세상

 

세상

 

1. 내가 나면서 세상이 열렸다. 어딘가에 세상이 있었다고 해도 내로 인해서 인식되었다. 내가 없어지면 세상은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린다.

 

2. 내가 있어서 세상을 보고, 내가 있어서 만유를 인식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직 세상이 없었고,내가 죽은 뒤에는 이미 세상이 없다. 설사 전세나 내세가 있다 하더라도,그 시대의 당사자에게나 의미있을 뿐,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3. 내가 생겨나서 세상의 존재를 확인하고,내가 살아가면서 세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의 존재나 미래의 존재도 나로 인하여 성립된다. 세상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에 이르러 끝난다.

 

4. 세상과 나는 상대적이다. 나를 무시하면 세상 속에 내가 있고,세상을 무시하면 내 속에 세상이 있다. 나를 위주로 하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세상을 위주로 하면 나는 허상이 되어 세상과 점점 멀어진다. 앞뒤로 놓인 거울 속에는 수많은 상이 생겨난다. 세상의 중심은 나고,상대는 모두 허상이다.

 

5. 세상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누가 아는가?  아무리 많은 것이 있다고 해도,내가 느끼지 못하면 모두 허무할 뿐이다. 하늘,땅,우주 등 만유는 내 마음 속에 있다. 세상은 내 마음에서 창조된다.

 

6. 나는 너일 수 있지만,너는 나일 수 없다. 나는 세상이 될 수 있지만,세상은 내가 될 수 없다. 무엇을 뜻하는가? 세상 때문에 내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나 때문에 세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7. 사람이란 무한한 우주에 생겨난 미미한 물거품인가?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하는 무한한 존재다. 지금껏 인류는 내 속에 있는 세상을 젖혀두고,거꾸로 세상이라는 공상 속을 헤매면서 주체인 자신을 객체화하고 있다. 내가 있어서 세상이 생겨난다. 세상이란 나에 의하여 생겨나 파생된 객체다.

 

8. 내가 태어나서 내 주위에 현실이 확정된다. 내 과거를 알리기 위해 외물이 존재하고,내 활동을 돕기 위해 세상이 본보기를 보인다. 내가 있기 위해 현실이 존재하고,내가 있기 위해 부모가 정해졌다. 세상은 나를 위하여 이루어졌다. 세상의 근본은 나다.

 

 

마음 속 세상

 

9. 태어나면 세상이 보이고,죽으면 세상이 사라진다. 낮에는 이 세상을 보고,밤에는 저 세상을 본다. 잠들면 정신이 자연과 하나가 되고,깨어나면 행동이 세상을 운용한다. 세상은 내 생각으로 창조된다. 나는 우주다.

 

10. 세상을 보아 내 마음을 알고,내 마음을 보아 세상을 안다. 세상의 모체는 내 마음이고,세상의 현상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깨어나면 세상이 눈 앞에 보이고,잠들면 세상이 마음 속에 잠긴다. 세상을 보는 것은 깨인 상태고,마음을 보는 것은 잠든 상태다. 마음의 깨임상태가 바로 세상이다. 세상이란 깨어나고 잠들고 하는 동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내 마음의 상이다.

 

11. 양면적인 세상이다. 내가 능동적이면 나 하는 대로 세상이 이루어지고,내가 수동적이면 내가 세상을 따라다니게 된다. 세상의 근원을 내 마음에서 찾으면 현혹이 없으나,마음의 근원을 세상에서 찾으면 평생을 헤매도 모자란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변한다. 세상의 근원은 내 마음이다.

 

12. 하늘,땅,무,신 등 만물은 자연의 일부로서,모든 것이 다 합해져야 온전한 세상이 된다. 내 생각은 세상을 알고,내 마음은 세상을 느낀다. 너나,시공,전후 등 한계가 없는 세상은 내 마음이다.

 

13. 하도 넓어서 가늠할 수조차 없는 세상이지만,눈을 감으면 내 마음 속에 나타난다. 마음은 우주보다 훨씬 커서 세상을 포함하고도 남는다. 하도 작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 비존재도 내 마음을 열면 모두 파악된다. 마음은 무보다도 훨씬 작아서 무를 헤아리고도 남는다. 마음은 세밀하게 작도도 또 큰 것이어서,무,무한,찰나,영원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마음보다 더 큰 것은 없고,마음보다 더 작은 것 또한 없다.

 

14. 작은 구멍을 통해 보이는 하늘은 자그마하다. 초점이 좁혀진 눈에는 세상이 작은 공간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마음이 아직 다 열리지 못한 사람은 무한한 우주나 절대적 무를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눈,귀,입 등 감각을 모두 닫으면 정적에 잠겨 우주의 막막한 공간을 경험한다. 열린 마음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15. 감각이 밖으로 향하고 있는가,안으로 향하고 있는가? 몸을 나라고 보기 때문에 안이라고 느낀다. 몸의 외부를 나라고 한다면,이제껏 생각해오던 감각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뀐다. 줄을 쳐놓고 이쪽에서 보면 이쪽이 앞이고,저쪽에서 보면 저쪽이 앞이다. 몸을 경계로 하여,몸에서 보면 공간이 세상이고,공간에서 보면 몸이 세상이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면,머리 한가운데서 소리가 난다. 마음은 밖에서 몸을 감싸고 있는데,몸 속에 든 것처럼 여겨진다.

 

16. 물체의 내부는 분자들이 공간에 둘러싸여 있고,물체의 외부는 하늘의 공간에 둘러싸여 우주와 통하고 있다. 몇개로 구분되는 수세미도,외형을 무시하고 내부에 뚫린 공간을 기준하면 구멍을 통하여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서 하늘과 맞닿아 있다. 우주 만물은 공간을 통하여 나와 이어져 있다. 아무리 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도,세상들은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몸을 분해하여 원소를 모두 들어낸 상태의 공간이 마음이다. 우주와 내 마음은 하나로 이어진 일체다.

 

 

세상의 출현

 

17. 하나로 짜여져 미리 확정되어 있는 세상이 아니다. 한 생명이 창조되면서 그에 따른 세상이 형성되고, 한 물체가 탄생되면서 그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 생명이 하나 사라지면 그에 속한 세상이 사라지고,개체가 모두 사라지면 이윽고 모든 세상이 사라진다.

 

18. 사람이 생겨나면서 세상이 생겨났다. 한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서 세상의 형상이 결정되었다. 사람이 부정하면 지금과 다른 세상이 형성된다. 개체가 모두 소멸하면 세상이 없어지지만,한 개체라도 살아님으면 세상은 남는다. 세상은 하나 하나의 개체마다에 존재하면서,여러 개체에 의해 겹쳐져서 개체의 중심만큼씩 비틀어져 있다.

 

19. 존재란 무엇인가? 무를 인정하면 유가 존재하고,무를 부정하면 유도 존재치 않는다. 나를 인정하면 세상이 인정되고,나를 부정하면 세상 뿐 아니라,나의 실체까지도 없어진다. 나와 세상은 무에서 집합된 실체고,또 무의 상태기도 하다.

 

20. 어째서 세상을 3차원으로 보는가? 사회에서 배운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사물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한다. 차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사람이 3차원적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존재나 비존재의 의문이 제기된다. 차원의 시각을 벗어던지면,세상이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무차원적인 것으로서,단지 내 생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21. 자식을 낳고 삶에 연연해 하면 미래가 있고,나 하나로 그치면 세상은 나에 이르러 그친다. 모든 것을 나로 끝맺으면 오직 현재만 있을 뿐,세상은 그것으로 그만이다.

 

22. 무엇을 생각하며 쓸데없는 일로 이 현재를 소비하는가? 감각을 닫고 생각을 멈추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살고 있는 이 현재고,나머지는 모두 공상에 속한다. 세상은 내가 아는 동안만 존재한다. 내가 지어내는 생각이 세상의 전부다. 삶이란 현재고,과거나 미래란 오직 마음 속 공상세계다.

 

 

다양한 세상

 

23. 세상은 복잡미묘하다. 같은 시간,같은 곳에서,같은 사건에,같이 반응하면서도,서로 다른 면으로,다른 생각을 하며,다른 상을 머리에 그리며 산다. 저마다의 세상에서 헤매는 동상이몽이다. 남이 못보는 면까지 함께 짐작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공연한 허센가?

 

24. 궁전을 거니는 사람,바다를 마당 삼는 사람,초가에서 산나물을 즐기는 사람, 저마다 취미가 다 달라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범인은 욕망섞인 속세에서 바쁘고,수도자는 탈속의 고뇌에 묶여서 지치고,깨달은 사람은 선경의 꿈속에서 방황한다. 만물은 저마다의 세상에 빠져서 모두가 딴 세상을 살고 있다.

 

25. 만물은 자기나름의 세상을 지니고 있다. 개체마다에 세상이 있을 뿐이지,공통의 세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개체가 접근하여 밀착되면 이중성을 띈 공간이 형성되고,그러면 서로의 세상을 넘나들게 된다. 세상은 하나기도 하고,만물만큼이기도 하다. 세상은 별개기도 하고,공통이기도 하다.

 

26. 아이의 세상,어른의 세상,저마다 모두 타당한데,어느 세상을 딱히 좋다 하겠나? 배우는 만큼 새로워지는 세상에서 낫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세상은 배우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배우지 않고는 서로 말조차 통하지 못하지만,배우기만 하면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저 아래 세상을 마음껏 내려다본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세상에 매여서 좁게 살 것이 아니라,다양한 세상을 두루 구경하며 폭넓게 즐기는 일이다.

 

27. 이슬의 세계,우주의 세계,예술의 세계 등 외물의 세상은 얼마나 다양한가? 꽃이 보는 이런 세상,나비가 보는 저런 세상,현인이 보는 그런 세상,서로 어떻게 다른가? 술에 취해서 본 세상,사랑을 하면서 본 세상,욕심을 털어내고 본 세상,모두 별다르다. 어느 것이 진정한 세상인가?

 

28. 우주는 넓고 다양하다. 무한한 세상을 작게 형상화하므로서 단순하게 규정지을 순 없다. 내가 본 세상만이,내가 경험한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다. 생각하는 대로 변하는 세상이므로,각자 나름의 세상이 있게 마련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세상을 모두 인정해야지,조잡한 사색 따위를 자랑하며 우격다짐으로 자기의 미흡한 세상을 남에게 강요해선 안된다.

 

29. 정해진 어떤 세상이 더 있거나,현인이 추구하는 이상세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저렇게,하며 틀에 박힌 세상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인들의 속된 바램이다. 더구나 사회에서까지 인위적 공상세계를 강요하기 때문에 세상을 살기가 더욱 힘들고 어려워진다. 내 생각 만큼의 세상이 있고,나 살고픈 만큼의 삶이 있을 뿐이다. 저마다 자연스레 배워지는 만큼에서 즐기는 낙원이 진정한 세상이다.

 

30. 마음은 무엇이나 가능케 하는 마력이 있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세상이 온통 맑아지고,내 마음이 진실하면 세상이 온통 진실해진다. 내가 기쁨을 뿌리면 세상이 모두 기뻐지고,내가 괴로움을 뿌리면 세상이 모두 괴로워진다. 내가 속세에서 살면 삶에 찌든 사회인이 되고,내가 선경에서 살면 세속을 초월한 신선이 된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나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인데,무엇을 따로 더 요구하는가? 이 세상은 나의 낙원이다. 나대로 아름다운 내 세상을 찾아내어 마음껏 웃어야지,남이 던저주는 대로 찡그린 남의 세상을 그대로 떠안고 울어서야 되겠나?

 

31. 마음이 사람이다. 마음이 하늘이고,마음이 세상이다. 외물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마음 하나 깨달으면 눈 닿는 곳마다 다 낙원이고,마음에 평화 떠나지 않으면 생각 닿는 곳마다 온통 선경이다.

 

32. 눈송이,꽃송이,새소리,물소리 등 세상이 온통 즐겁고 아름다운데,어쩌다 아직껏 어울리지 못했나? 어렸을 적,사회로부터 짓눌려서 근심스레 바라보았기에 세상이 모두 짜증투성이였다. 평소에 세상이 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괴로움이 싹터서 마음 한 구석이 항상 무지근하고,평소에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괴롭더라도 희망이 솟구쳐서 한시도 즐겁지 않을 때가 없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일생을 지옥 속에서 헤매는 것이고,이 세상을 낙원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일생을 낙원 속에서 즐기는 것이다. 좋게 가꾸기만 하면 얼마든지 좋아지는 마술같은 세상이다. 우리는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2. 나

 

 

1. 내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것이 나"라고 인식되어 오는 것이 있다. 다만,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이 아직 지구상에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어떻게도 표현해낼 수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처럼 여기고 있을 뿐이다.

 

2. 조용히 앉아 나를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드디어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텅빈 무,무의 충만,그것이 나의 순수한 실상이다. 항아리는 담기는 것에 따라 안방에 모셔지는 꿀단지가 되기도 하고,마루 밑에 숨겨지는 요강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무엇으로 그  텅빈 가치를 채우느냐에 달렸다. 그 채워지는 의미가 바로 지구인으로서의 나다.

 

3.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나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우선 나의 순수한 의미와 세속적 의미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아이 때,청년 때,노인 때,나는 어떤 차이가 있나? 학문,기예,재능 등이 쌓이면 나는 어떻게 변하나? 세상에 태어나서 습득되는 능력이란 단지,나의 세속적 생활수단일 뿐이지,순수한 나라고는 할 수 없다. 세속적 인식을 자아내며 행위나 감정을 유발하는 주체가 진실한 나다.

 

 

나의 존재

 

4. 몸,정신,어느 쪽이 난가? 몸이 있어서 정신이 있고,정신이 있어서 내가 있다. 몸이나 정신은 내가 아니다. 감각이나 생각,인식이나 의식,지혜나 기술,그 무엇도 내가 아니다. 나는 따로 있다.

 

5. 사람의 형태를 평소의 내 모습이라고 감각하지만,팔을 잃으면 만들지 못하는 내가 되고,다리를 잃으면 걷지 못하는 내가 되고,눈을 잃으면 빛을 모르는 내가 되고,두뇌를 잃으면 생각을 못하는 내가 되고,몸을 잃으면 지구적 감각을 모르는 내가 된다. 그러나,몸을 다 들어내지 않는 한,나라는 의식은 없어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를 나라고 하겠나? 나는 몸 밖에 있는 존재다.

 

6. 나는 사람의 감각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몸이 없어지면 사람의 인식을 잃고 무로 복귀한다. 그것은 사람도 혼도 아니고,형체도 의식도 없는 그냥 무일 뿐이다. 나라는 사람적 의식은 몸의 감각으로 인하여 생겨났다가 몸이 해체되면서 사라진다. 나는 몸이 지어내는 유한한 정신이다.

 

7. 내가 하는 일도,내 의지와는 달리 습관적으로 행해지기 일쑤다. 습관에서 벗어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게 되고,마음먹는 대로 행위를 자제할 수 있게 되어야 비로소 순수한 나의 존재를 실감한다. 나는 습관에 의해 지어진 정신의 보조로서,일종의 로보트다.

 

8. 어린 나,늙은 나,어느 상태를 나라고 할까? 완성을 하여 끝마무리를 지어야 비로소 완전한 작품이 하나 탄생된다. 만들어지는 도중의 과정들은 그 작품의 전부일 수 없다. 심신을 연마하여 완전한 사상이 결실되어야 비로소,사상과 기량을 함께 지닌 내가 탄생된다. 사상이 없이 몸 만으로는 아직 사람이라 할 수 없고,지식과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기 이전은 아직 완성된 나라 할 수 없다. 처음 시작에서부터 결실을 맺을 때까지의 전 과정이 합해져야 비로소 시공을 초월하여 진실한 내가 된다.

 

9. 지난 일을 회상해보면,어린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그러나,능력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것은 나라는 일정불변한 본질 위에 기능이 더 보태어졌음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는 자라는 나무처럼,시간과 함께 성장하는 생명체다.

 

10. 나는 시간,공간 및 차원의 여하에 따라 달리 구별된다. 과거,현재,미래 등,보는 시점에 따라 순간적인 나와 영속적인 나로 규정되기도 한다. 몸이 있기 이전은 순수한 나고,몸이 생겨난 이후는 지구적 나고,사회에서 어울리면 사회적 나고,결실을 맺어내면 사상적 내가 된다.

 

 

나의 성질

 

11. 나를 형성한 정자가 다른 자궁 속에서 성숙되었나면 어떨까? 내가 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지금의 나일 수 있을까? 성격은 배우는 대로 결정되고,인격은 생활습관이나 교육정도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각각의 나는 수준이 다른 생각으로 전혀 다른 말을 하는데,어떻게 같은 나라고 하겠나? 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 존재다.

 

12. 이 사회가 출현하기 전에 내가 태어났다면 어떨까? 나라는 개인의식 없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자연스런 존재가 있을 뿐,지금의 사회적 나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사회가 없어지면,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이름없는 정신만이 남는다. 나는 가족,이웃,외물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존재다.

 

13. 처음 몸이 태어났을 때는 아직 의식이 없다가,사람으로 양육되면서 나라는 인식이 부여되고,이름이 지어진 후 교육이나 습관에 의하여 나라는 실체가 재창조된다. 갓태어난 아기는 의식이 없는 순수한 상태고,어느 만큼 자란 아이는 의식이 있는 지구적 상태다. 나는 사람적 개체와는 다른 어떤 기억이다.

 

14. 나의 존재는 과거에도 있었고,현재도 있으며,미래에도 있으면서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라는 실체를 인식하고 있으며,자신의 의식이나 생각은 절대라고 믿으며,자신의 존재가 영원하리라는 것 또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다만,꿈 속에서 꿈 이외의 것을 인식치 못하듯이,삶 속에서 삶 이외의 것을 인식치 못하기 때문에,현실만을 인정하면서 현재라는 시간과 우주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이어지는 존재다.

 

15. 나라는 의식은 몸에 의하여 생겨난다. 잎이 떨어지면 나무의 감각을 잃듯이,몸이라는 실체를 벗어나면 나는 지구적 감각을 잃어서 인식이나 생각이 없는 무의식상태가 된다. 그 상태는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고,유나 무도 아니며,살지도 죽지도 않는 형태 이전의 텅빈 상태일 뿐이다. 나는 감각이 자아내는 인식상태다.

 

16. 거울에 상이 나타나듯이,사물에 부딪칠 때마다 실체가 아닌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무줄을 당겨봐야 탄력이 감지되는 것처럼,외물에 접촉하게 되어야 비로소 몸을 보호키 위해 나타나는 내가 감지된다. 나는 외물을 빌어서만 겨우 확인되는 존재다.

 

17. 혹이 하나 달리면 그 때문에 괴로운 감각이 생긴다. 우주에 사람이라는 혹이 하나 생겨나서 우주 공간이 어떤 이질감을 느낀다. 나는 공간이 물체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18. 몸이 없어지면 나라는 지구적 의식이 없을 뿐,나는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빛과 소리가 빚어내는 감각에 묶여서 순수한 나의 자유시각을 놓치고 있다. 눈,귀,의식 등 몸이 자아내는 파동적 감각에서 초탈하게 되어야 비로소,나는 몸 속에 갇힌 작은 지구인에서 벗어나 우주가 된다. 나는 파동이 빚어내는 인식이다.

 

19. 차분히 생각할 때는 내가 나타나지만,일단 행동이 시작되면 나라는 의식은 사라지고 감각이 남는다. 감각이 이는 순간,나는 흐려져 숨는다. 그러나 감각이 아니고는 나를 의식할 방법이 없다. 나는 감각이 없는 형이상적 상태다.

 

 

나의 실상

 

20. 시계를 만들면 생명이 생겨나듯이,몸이 생겨서 내가 탄생되었다. 시계나 나나 몸이 해체되면 원래의 무로 복귀한다. 사람의 무나 시계의 무나,매개되는 대상에 따라 형상이 달리 변형되어 나타날 뿐,그 근원은 다를바없다. 나는 무에서 생겨났고,지금도 역시 무의 변형상태에 있다.

 

21. 나는 에너지나 어떤 질료가 있을 때 생겨났다가,상황이나 실체가 없어지면 다시 무로 환원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것도 없는 무가 아리라,통나무처럼 속이 꽉차서 오리려 텅비었다고 할 수 있는 무의 상태다. 나는 무에서 발생하는 유동적 존재다.

 

22. 잘 때는 무의식상태에 빠지지만,외부로부터 감각이 일면 언제라도 나타날 준비상태에 있는 의식의 휴식일 뿐,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잠에서 깨어나야 나라는 의식을 느낀다. 나는 몸의 조화가 주위의 상황에 응하여 감각으로 변형되는 인식이다.

 

23. 나의 본체는 생각할 때 비로소 감각을 통하여 확인된다. 나는 생각하면 떠오르고 생각지 않으면 사라지는 존재로서,생각과 관련된 아지랑이 같은 상태다.

 

24. 잘 때는 없던 세상이 깨어나면 생겨난다. 눈을 감으면 무가 되고,무언가를 생각하면 유가 된다. 생각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고,생각하면 그만큼의 차원이 생긴다. 아무 것도 없다가 나타나는 차원이 나며 세상이다. 나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어떤 차원이다.

 

25. 내가 느끼는 나의 크기는 어떠한가? 힘,기술,재력,권력 등 현실적으로 지닌 실력만큼을 나라고 느낀다. 그러나,그 크기는 나의 상상력,믿음의 정도,처한 시기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달라져서 일정한 형체나 시간을 타지 않는다. 나는 생각에 따라 순간순간 결정되는 불확실한 존재다.

 

 

기억의 모임

 

26.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의 사건이 남기는 것은 머리 속에 조각난 기억들 뿐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나를 인식하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고,세상이나 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역시 기억 속에서 가능하다. 그러나,생각하기를 그만두면 그순간 나는 의미를 상실한다. 지금껏 쌓아모은 기억들을 모두 털어내면 지구적인 나는 사라지고,순수한 나의 본체만 남는다. 나는 기억의 어떤 상태다.

 

27. 생물은 세월따라 변해도 세상은 그대로 이어지고,물분자는 자리를 계속 바꾸어도 수면은 그대로 이어진다. 몸 속의 원소는 쉴새없이 모였다 흩어지지만,몸에서 나타나는 나는 항상 그대로 유지된다. 전등에서 나오는 빛처럼,공간에 채워진 원소의 알맹이와 그 배열방법에 의하여 발생하는 힘의 변형상태가 나다. 전류가 흘러 자장이 생겨나듯이,흐르는 사상과 지나치는 시간 위에 나라는 의식이 생겨난다. 나는 몸과는 별개의 것이지만,몸에 의지하는 존재로서,개체에 한정된 기억이다.

 

28. 기억이 모이고 생각이 이어지면서 다른 생각으로 계속 번져나간다. 이 생각과 저 생각이 이어져서 기억을 불려나가고,기억과 생각들이 다시 모이면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된다. 기억이 누적되어 합해진 상태가 나다.

 

29. 생각이란 행동이나 습관이 빚어내는 결과다. 때마다 익혀진 습관들이 모여서 생각을 구성하고,습관과 성격이 작용하여 생각을 지배한다. 행위가 익숙해지면 습관이 되고,습관이 누적되면 유전인자가 바뀌어 잠재의식이 된다. 유전인자의 배열방식과 구성요소가 심하게 바뀌면 나는 전혀 다른 나로 변한다. 나는 습관으로 이루어진 종합적 존재다.

 

30. 마음을 모아 손잡고 행동할 때는 하나의 정신으로 엉켜서 서로라는 구분이 사라진다. 여럿이서 토론할 때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측면을 주위에서 일깨워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자문자답하는 상태와 별로 다를바 없다.기꺼이 마음을 주거나,몸 바쳐 일할 때는 나라는 자의식이나 개체가 사라져서 자연의 일부가 된다. 나란 주위에 의해 익혀진 결과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후천적 기억이다.

 

31. 누구나 태어나면서 스스로 만든 자화상을 머리 속에 그리며 평생을 살아간다. 사는 동안 더러는 그 그림이 바뀌기도 하지만,처음의 형상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를 못한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는 스스로 독창성을 발휘하여 자신을 개조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란 스스로 그려내어 기억해둔 자화상이다.

 

 

나의 탄생

 

32. 사람이란 무엇인가? 몸 만으로는 동물의 한 유형일 뿐,아직 사람이 아니다. 사회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 지금 사람과 예전 사람은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르다. 색다른 문화와 함께 새로운 인격체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문화가 더욱 발전하면 지금 사람과는 정신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새로운 사람이 탄생된다. 시대정신과 세대차가 그 시발이다. 문화란 새 인종을 창조하는 돌연변이적 요소다.

 

33. 사회의 틀이 없으면 개인이란 구분이 없다. 한 가족의 분위기에서 자라서 한 식구가 되고,낯선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라서 남이 된다. 가족이 생기면서 남과 나를 구별하였고,사회가 구성되면서 이름붙은 개체가 탄생되었다. 외물이 없으면 개체가 없고,남이 없으면 내가 없다.

 

34. 소유,존재,이해,호악 따위를 구별해서 내가 생겨났다. 세상을 구분치 않으면 나라는 관념이 필요없고,생사를 괘념치 않으면 나라는 자체가 의미없다. 기분히 흡족할 때,생활이 풍족할 때,좋은 면만 있을 때,서로 돕는 의지가 있을 때,피해가 부수되지 않을 때에는 너나 나를 구분치 않는다. 궁지에 몰리거나,삶이 침해당할 때,나쁜 면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는 욕구가 나라는 의식을 만들어낸다. 나란 몸을 보존하는 방편으로서,피해를 제거키 위애 생겨나는 삶의 의지다. 생명의 유지본능이 나라는 자아를 창조한다. 나란 생명의 수호신이다.

 

35. 나라는 의식없이 백지상태로 태어난 아이는 돌봐주는 이가 없으면 서슴없이 죽는다. 그러나,주위의 보살핌 때문에 할수없이 지구의 일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몸이라는 인식과 함께 삶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습관이 생겨난다. 동물적으로 하려는 마음과 교육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갈등이 대두되면서 나라는 자의식이 형성되어,처음 태어날 때는 없었던 지구적 내가 새로 생겨난다.

 

36. 처음에는 내가 없었다. 다만,나라고 이름 붙이면 내가 되고,그라고 이름 붙이면 그가 되는 존재로서,자연스런 한 물체였을 뿐이다. 나라고 인식을 해서 내가 생겨났다. 그러나,나라는 인식이 있을 뿐이지,따로 정해진 나라고는 없다. 지금이라도 내가 아니라고 인식하면 나는 사라진다. 세상에는 스스로 나인 것을 인정해서 태어난 수많은 내가 있다. 사람마다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는 개체나 소유의 구분이 없어서 모두 공통의 존재다.

 

37. 전혀 무지할 때는 나라는 개인의식이 없다. 조금 배우면 자의식이 생겨나고,많이 배우면 나라는 자존심이 강해진다. 그러다가,만사에 통달하고 나면 다시 개인의식이 사라져서 사회의 일부가 된다. 자손심이 강하면 나는 존재하고,자존심이 약하면 나는 사라진다.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란 아직 개인일 동안에 느끼는 소아적 감상이다. 아이 때는 조금만 다쳐도 못참지만,어른이 되고 사회의 대표가 되면 개인감정을 초탈하여 사회적 개체가 된다. 나를 초월하여 대아가가 될 때,비로소 나라는 개인의식에서 벗어나 세상과 하나가 된다.

 

38. 평소,나라는 의식이 항상 잠재되고 있다. 무의식 상태에서도 나의 존재가 실체로서 확인된다. 그런데,어찌 나를 허상이라고 하는가? 언젠가 한번이라도 나라는 인식이 만들어지면,그 인식은 잠재의식으로 자리잡고 평생동안 정신을 지배한다. 허상인 내가 실상으로 감지되는 까닭은 인식,감각,생각에도 잠재적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39. 내가 어떻게 생겨났나? 지금 어떻게 생각을 하나? 내가 있어서 생각을 하고,생각을 해서 내가 생겨난다. 어떤 내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생각과 내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아이 때는 내가 없다. 무심할 때도 내가 없다. 아직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지를 않으면 나도 없고,아무 것도 없다. 존재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면서 나라는 자각이 일고,"나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을 일으킬 때 비로소 내 존재가 생겨난다.

 

40. 몸이 생각과 나를 함께 발생시킨다. 순수한 나에 몸이 생기면서 동시에 정신이 형성되고,정신에 의식과 인식이 생기면서 사람이라는 지구적 내가 탄생된다. 몸에서 내가 생겨나고,나에게서 사람의 존재가 생겨난다. 내 입장에서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무형의 허상이지만,사회의 입장에서는 태어났다가 죽는 실존적 사람으로 기억된다.

 

41. 내가 어떻게 갑짜기 생겨나나? 내가 어떻게 계속 이어지나? 없던 불꽃이 생겼다. 그것은 미리 준비되었던 결과로서,무에서 유발된 변화다. 변화가 변화를 낳으면서 계속 이어진다. 그것은 변화의 연속이 아니라,매 순간 무에서 유로 반전되는 탄생과 소멸의 현상이다. 연속이나 초월이란 단지,시간의 길이를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탄생이란 과정을 다 못본 단정이고,진화란 과정을 다 보아 확인한 단정이다. 탄생이나 진화,창조나 발전이란 같은 하나로서,물질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작용으로 생겨나는 관점차일 뿐이다.

 

42.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이 내 눈에 보이는데,어찌 나나 세상이 따로 없다고 하는가? 어려서는 부모로부터 사회를 배우고,자라서는 사회로부터 세상을 배운다.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알려준 대로 인식한 배움이고,인류의 지식이란 누군가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서 인정된 사회의 약속이다. 나나 세상도 마찬가지로,선조들이 지금처럼 창조해냈기 때문에 눈앞에 나타나 보이게 되었다. 현실적 존재란 모두 말장난으로부터 확대되어 나타난 작위적 허상이다.

 

43. 예전에는 세상이 네모지다 했고,지금은 둥글다 한다. 전에는 소인이나 추녀가 따로 있다고 했으나,지금은 영양이 충분하고 주위환경이 생육조건에 알맞아 고난거리가 없으면 생물체는 훌륭히 자라나 본성적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더 일어날지 누가 아는가? 사회는 항상 유동적이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이론이 하나 제기되어 세상에서 진리로 통용되다가,새로운 이론이 다시 제기되면 전의 진리는 오류가 되어 누구도 인정치 않는다. 내가 인정해서 내가 생겨났고,세상이 인정해서 세상이 생겨났다. 나뿐 아니라,현상계란 모두 생각으로 창조된 요지경 속 풍경이다.

 

44. 나나 세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무엇을 어떻게 안다고 하는가? 나는 나를 안다고 확신한다. 나를 아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안다는 것은 모른다에서 시작된다. 앎이란 경험을 했다는 것이고,몲이란 경험치 못했다는 것이다. 경험이 한두번 쌓여서 뇌리에 누적되면 아는 것이 된다. 세상의 앎이란 모두 경험적 자아를 터득해서 인식되는 실체다.

 

 

다섯나

 

45. 나는 하나지만,세분하면 "다섯나"로 구분된다. 몸을 움직여서 행동하는 "하는나", 판단하여 지시하는 "해라나", 하지 못하게 붙잡는 "말까나", 하라고 충동하는 "할까나", 본성적으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빈나", 이렇게 다섯이다. "다섯나"로 나누어 습관,지식,욕구 등의 얽매임을 풀고,수도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하나의 나로 생활한다.

 

46. 빈나는 몸과 정신으로 나뉘고,정신은 할까나,말까나로 나뉘며,몸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말까나는 무의식과 공통이며,빈나는 무의식을 통하여 습관을 관장한다.

 

<그림1>

 

47. 빈나는 3가지 동작과정을 통하여 행위로 나타난다.

  4단계; 빈나가 사건에 응하면 할까나,말까나가 서로 다투어 문제를 제기하고,해라나가 비교검토하여 지시하면,하는나는 즉시 몸을 움직인다.

  3단계; 빈나가 해라나와 하는나에 바로 연결된다. 이때,기억이나 습관이 해라나로 작용한다.

  2단계; 빈나,해라나와는 관계없이 몸에 자극이 미치면 즉각 반사작용이 하는나에 미친다.

 

48. 태어나기 전에는 빈나로 존재하고,태어나는 과정에서는 빈나,하는나의 두나였다가,태어나면서 세나가 보태져 다섯나로 지구세상을 살다가,죽으면 다시 빈나로 돌아간다.

 

49. 빈나란 무엇인가? 몸이나 물체를 형성하는 근본으로서,빈 공간의 상태를 유발하는 순수한 무다. 의식과 인식을 주관하는 주체로서,보통 일컫는 신,하느님,상제 등의 순수한 내가 그것이다.

 

50. 빈나란 시공,차원,그 무엇도 없는 초월한 무다. 그렇다고 영(0)도 아니고,그저 본래의 나일 뿐이다. 내 속에는 영,무,실물,무한 등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나를 실물이라는 한 단면으로만 좁게 보아서 하나의 상태로 인식하게 된다. 시공을 벗어나서 우주의 다양한 입장에서 보게 되어야 비로소,나는 무한이며 무로서,동시에 초월하는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51. 빈나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고,어떠한 인식도 지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식치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자는 상태의 인식을 하면서,이것이다,저것이다 하는 구분없이 인식 자체를 흡수하고 있다.

 

52. 눈을 고정하는 것은 하는나고,보는 주체는 빈나다. 빈나에게는 시간이 없으나,하는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빈나는 우주 그 자체로서,시간을 초월하여 언제라도 보고 있다. 빈나가 하는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을 초월하고,빈나가 하는나에 실리면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53. 하는나가 활동할 때 시간이 흐른다. 빈나가 네나를 통제하여 활동을 멈추면 시간이 멎는다. 하는나가 움직여서 기운이 유통되면 할까나,말까나,해라나에 힘이 나타나서 시간이 작용한다.

 

54. 물이 흐르면 소리가 난다. 빈나에 힘이 돌아서 두뇌의 통로가 열리면 정신의 율동이 할까나,말까나,해라나의 맞부딪침으로 변하여 인식이 생겨난다. 빈나와 하는나의 관게에서 의식이 발생하고,할,말,해라나의 관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생각은 세나가 이루어내는 힘으로서,의식과 연결된다.

 

55. 의식은 감각상태다. 빈나가 무언가를 감각하는 것이 깨인상태고,빈나가 무의 상태를 감각하는 것이 나라는 의식이다. 무에서 무를 경험하면 아무 변화도 없다. 무에서 유,또는 유에서 무를 경험하기 때문에 이질감이 의미로 변화되어 내가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표현된다.

 

56. 몸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파장을 거부치 않고 자연스럽게 탈 때,빈나가 회복된다. 애써 파장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파장에 맞춰 동승하므로서 위상차를 없이하는 것이다. 나에게서 웃고 우는 동작,느낌,생각 등을 지우면 빈나가 나타난다.

 

 

세나

 

57. 할까나,말까나는 교육과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지식의 변형이다. 양심이란 습관이나 훈련의 결과가 유전인자에 기록된 말까나다. 학문이나 기술이 깊어지면 할,말까나의 할 일이 줄어든다. 빈나,해라나,하는나가 모든 일을 감당해내기 때문이다.

 

58. 할까나는 정신상의 동물적 부분이고,말까나는 의지가 가미된 사람적 부분이다. 뽐내고 싶어하는 할까나가 강하면 외성적이 되고,그것을 잡는 말까나가 강하면 내성적이 된다. 흥에 취하고,사랑에 취하고,술에 취한다. 무언가에 취하여 할,말까나가 잠들면 이성을 잃고 몸을 잊는다. 흥분하거나 겁에 질리면 할까나가 강해져서 짐승으로 몰락한다.

 

59. 감성은 할까나고,이성은 말까나다. 감성과 이성의 대립을 해라나가 조화한다. 할까나는 즐거움과 욕망이고,말까나는 기억,습관,잠재의식이며,해라나는 판단이다. 자제력이란 할,말까나의 균형을 해라나가 조절하는 능력이다. 나이가 들거나,심기가 약해지면 해라나가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60. 할,말까나의 다툰 결과가 해라나에 의해 정리수록되어 유전인자의 구성요소를 바꾼다. 세나는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스스로 비교검토는 못한다. 빈나가 할,말까나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라나에 검토시켜 그 결과를 기억소자에 넣으면,그에 따라 해라나가 판단을 한다. 두뇌가 결말을 지어 습관으로 기억시켜두기 전까지는 스스로 뚜렷한 행위의 기준을 찾지 못한다.그러나,일단 기억이 되면 어떤 일이라도 그에 따라 행위가 시행된다.

 

61. 할,말,해라나 중 어느 하나가 과도히 늘어나면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세나는 몸에서 분비되는 액체상태의 비이성적 존재로서,몸의 영양상태나 외부의 파장에 의하여 자극된다. 좋다,싫다,괴롭다,즐겁다 하는 감정은 할,말까나가 지어내는 화학적 감상이다. 좋은 일도 자주 하면 싫어지는 것은 화학작용으로 반응이 중화되기 때문이다. 할까나는 즐거움 쪽의 분비액을 증가시키고,말까나는 괴로움 쪽의 분비액을 증가시킨다. 양(+)쪽이 강하면 즐거움이고,음(+)쪽이 강하면 괴로움이다. 그 분비액의 차이에 따라서 마음의 감정이 결정된다.

 

62. 행위를 어느 내가 주도하느냐가 문제다. 하는나가 중심일 때는 네나가 묻혀서 육체적 상태가 되고,할,말까나가 중심일 때는 몸을 잊는 정신적 상태가 되고,세나가 잠들면 빈나,하는나의 두나로 존재한다ㅣ. 다섯나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면 현인이고,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범인이다. 완전한 나로 상상 깨어있자면 다섯나를 적절히 조화하는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해라나

 

63. 볼 때는 빛에,들을 때는 음파에,말할 때는 생각에 내가 실려서 나는 대상 그 자체로 변한다. 외물에 접하면 나는 감각으로 변하고,감각이 없어지면 다시 순수한 나로 회복된다. 보고,듣고,감각하여 나타나는 생각,느낌,감정 등은 해라나가 되어 하는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외부의 파장이 두뇌에 바로 전해지고,보거나 들어서 확실히 이하되면,해라나로서 작용을 한다.

 

64. 내적 해라나와 외적 해라나가 있다. 스스로 눈을 감으라고 하는 내부명령이나,최면 등의 반의식상태에서 눈을 감으라고 하는 외부명령은 같은 해라나의 지시가 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든,내부에서 우러나온 것이든,일단 해라나의 지시가 떨어지면 하는나는 즉각 행동을 시작한다. 해라나가 작용하여 초점이 맞춰지고,그에 반응하는 구조는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흡사하다.

 

65. 느낌은 해라나에 의해 추려내어진 기억이다. 외물에 접하여 감각이 이는 것은 모두 해라나가 되어 기억을 불러낸다. 기분에 따라 움추리거나 뻐기는 것은 내부의 해라나에 의해 자극되어 하는나가 움직이는 상태고,무엇에 홀렸다거나 최면당했다는 것의 외부의 해라나가 주입된 상태다.

 

66. 무엇이든지 해라나가 되기만 하면 우이성적으로 하는나에 전해진다. 글이나 그림이 이해되어 믿기우면 바로 해라나가 된다. 직접적이고,간결하고,자문자답식일수록 보다 강한 해라나가 된다. 주문이나 반복회상은 강력한 해라나다. 마음을 계속 다져서 몸의 조절자를 움직이는 직접적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는 결심이나,외부로부터 주입된 암시나,희망으로부터 얻는 의욕이나,어느것이든 자율신경을 움직이는 해라나의 효과는 같다. 스스로 믿게만 되면,거침없이 행해져서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다. 나에게는,남에게든,해라나의 조건을 임의로 부여하여 감각을 불러들이면,어떤 일이라도 시행토록 유도할 수 있다.

 

67. 습관,지식,잠재의식 등은 빈나가 만들어 기억시켜둔 해라나의 자료다. 눈,귀 등 감각을 여닫는 기술과 생각의 초점을 모으고 흩는 기술을 특별히 연마하여 언제라도 해라나를 자유로이 조절하고,반대방향의 해라나를 만들어서 기존의 해라나를 중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하여 외부의 연쇄반응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68. 잘 때는 외부에 대한 반사작용이 거의 없다. 바다에 뜬 조각배처럼,외부의 충격을 거부치 않고 수용하기 때문에 하는나가 주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게 된다. 평소 반작용이 일지 않는 반의식상태를 지어내어 주위에 대한 거부작용을 없이하면,하는나는 항상 활기에 넘친다.

 

69. 사회의 잘못된 교육탓에 욕구가 한겹 덛씌워져서 남보다 나아지려는 집착이 강해진다. 자존심을 버려서 자연스런 사물이 되어야 할,말까나가 제거된 위에 이기심까지 사라진 나의 참모습이 나타난다.

 

70. 빈나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면 진리에 어긋날 리가 없다. 그 자체가 자연으로서 진리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모두 가식 속에서 행해진다. 반사적으로 거부장용이 부수되는 의식적 꾸밈을 버리고,아이처럼 언제 어디서라도 구애되지 않는 자연스런 자태가 되어야,비로소 순수한 내가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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