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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시안의 눈물 -갈 수 없는 고향, 인디안의 선조-차탕족

알마자야 2007. 1. 19. 17:06

갈 수 없는 고향, 차고시안의 눈물

http://news.kbs.co.kr/article/news_world/200701/20070114/1283407.html

 

<앵커 멘트>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에 의해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양 한 가운데 있는 섬, 지금은 미군의 최대 전략 요충으로 변한 디에고 가르시아에 살던 원주민, 차고시안들 얘긴데요.

 

세계인, 오늘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추방당해 40년 가까이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차고스 원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김종명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살았을 때 나는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새와 같았습니다.'

 

런던 남쪽의 중소도시 크롤리의 사회복지센터 낡은 이불과 허름한 침낭만으로 건물 입구, 밖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닥에는 빈 종이상자를 겹겹이 깔았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썼지만 벌써 매서워진 바람을 이겨내기엔 힘겨워 보입니다.

 

이곳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 째 접어든 66살의 레지나 할머니.

52살의 호크 에두아씨.

 

모두들 집 없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간다고 합니다.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 섬에서 강제로, 혹은 영문도 모른 채 추방당한 통한과 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지나(66살) : "우리의 고향은 낙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쫓아내 가난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우리는 뭉쳐있었지만 영국 정부가 갈라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중간에 놓인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 64개의 아름다운 산호섬 가운데 한 곳인 디에고 가르시아가 이들 차고시안의 고향입니다.

 

지난 60년대 초까지 영국령의 이 작은 섬 원주민들은 코코넛 재배를 주로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들이닥친 미군들은 2천 여명 주민들을 차례로 내쫓았고, 섬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에두아드 오노(63살) : "(우리를 협박하기 위해) 애완동물들을 트럭에 실은 뒤 배기통을 막아 질식 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군사 시설물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1년, 그리고 2003년에 이라크 상공에 폭탄을 퍼부은 B-52, 그리고 스텔스 폭격기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한 전폭기, 모두 차고시안을 몰아낸 후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건설한 미군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2천명 원주민의 고향이 미군의 최대 전략요충지로 바뀐 것입니다.

 

넓은 활주로와 폭격기, 수십 대의 군함, 2천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이 기지를 미군들은 캠프 저스티스,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내 차고시안 대표) : "'그들은 우리의 섬을 그들의 전쟁을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안전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강제로 고향을 내주고 낯선 땅 모리셔스 항구의 선창에 내던져진 차고시안, 그들 앞에는 기나긴 가난과 절망,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52살) : "어떤 사람들은 모리셔스에서 살기 싫다며 자살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고통의 세월이 30년,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졌던 이들의 존재와 추방과정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정부 비밀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 ITV는 영국 정부가 군사기지를 찾고 있던 미국 정부에 섬을 빌려주는 대가로 폴라리스 핵 미사일을 싸게 사기로 비밀 협정을 맺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녹취> ITV 보도 내용 : "그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 방문은 수십억 달러의 군사기지를 짓기 위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극비 사전 조사가 시작됨을 뜻합니다."

 

당시 작성됐던 영국 정부의 문건에는 2천명 원주민의 보금자리가 '갈매기만 살고 있는 섬'으로 묘사돼있습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영국정부는 당시 유엔에서 원주민들을 이유로 (기지 건설) 계획을 막을까 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섬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작다는 점을 이용해 원주민의 성격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최강대국 미국과 영국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차고시안을 도우려는 영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고향을 찾기 위한 힘겨운 법정투쟁도 시작됐습니다.

2000년 영국의 대법원은 차고시안 추방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서광이 비쳤지만 2003년에 다시 뒤집어졌습니다.

 

이어(2004년)영국 정부는 왕실칙령을 발동해 차고시안의 귀환을 원천적으로 막았습니다.

미군들이 천혜의 자연조건이라며 자랑하는 이 섬을 홍수 피해 때문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홍수 우려 때문에) 미군이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 차고시안들이 귀향 요구를 철회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4월 백여 명의 차고시안이 영국 해군의 배를 타고 그리던 고향땅을 밟았습니다.

비판여론을 의식한 영국 정부가 백 명에 한해, 단 며칠간만, 그것도 영국 해군의 철저한 통제아래 방문을 허락한 것입니다.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쁨은 잠시, 모두들 통한을 남겨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영국군 군함에 올려야했습니다.

 

추방 당시 2천 명이었던 차고시안은 이제 5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대부분 모리셔스의 슬럼가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부근 섬으로, 혹은 영국으로 흩어졌습니다.

비록 일부는 영국 정부의 뒤늦은 보상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차고시안들은 이방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생계수단도 심지어 잠잘 곳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 : "날은 춥고 비도 오는데 노숙해야하는 딸이 걱정입니다. 내 딸은 아직 어린데 길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고 문제가 될 것같아..."

일주일에 한번, 이들은 고향을 빼앗아간 영국 땅에서 최소한의 삶이라도 먼저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 거주 차고시안 대표) : "지난 40년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원합니다. 영국내 안전과 임대주택을 바랍니다."

 

<인터뷰> 크롤리 카운실(담당관) : "그들은 영국시민이고 영주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임대주택)대기명단에 오를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기다려야합니다."

 

차고시안들의 사연은 이제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돼 영국 법원을 넘어섰습니다.

영국 대법원앞에서..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차고스 원주민에 행한 일들은 그들이 강조하는 인권, 정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입니다.

차고스 사람들은 이를 두 강대국의 위선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 우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요. 우리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앵커 멘트>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선의에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차고시안에서 이라크인들에 이르기까지, 고향에서의 안온한 삶을 빼앗긴 이들에게 강대국들의 대의명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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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인디언의 선조 ‘차탕족’

http://news.kbs.co.kr/article/news_world/200701/20070121/1287183.html

 

<앵커 멘트>

여러분은 몽골의 차탕족을 들어보셨습니까?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대다수의 몽골인들과는 달리 서북부 고원지대에서 사슴을 타고 다니는 소수 부족인데요. 외부 세계를 피해 족내혼을 하면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이어온 이들이 최근 문명의 바람과 중앙정부의 흡수 정책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박석호 순회 특파원이 차탕족을 소개합니다.

 

<리포트>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서쪽으로 550 킬로미터. 제주도 넓이의 1.5 배, 수심은 240 미터가 넘는 담수호, 홉스골 지역입니다. 말을 타고 숲 속으로 들어간 지 한 시간. 250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몽골의 소수 부족, 차탕족 가족을 만났습니다.

 

삼각뿔 모양으로 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천을 덮어 만든 오르츠.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과 모양이 똑같습니다. 2만여년 전 빙하시대 몽골 수렵민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해 인디언의 조상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내부는 여섯 평 남짓한 좁은 공간. 안에 모닥불을 피워 겨울에도 따뜻함을 유지하던 오르츠에는 지난해 장작 난로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홉스골 호수가 관광지로 유명해지자 인근에 몽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문명의 이기가 스며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닥지(53세/차탕족) : "옛날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두려워서 도망쳤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고 좋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날은 이들 가족이 이사를 하는 날. 항상 옮겨다니는 생활 때문에 모든 가재도구는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들어있습니다. 오르츠를 해체하는 데는 채 20여 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3주 정도에 한번씩 이렇게 이사를 하는 것은 이들이 키우는 순록 때문입니다. 순록의 먹이가 되는 풀, 차탕족이 허부츠라고 부르는 이끼풀의 뿌리를 보호하자면, 한곳에서 순록을 오래 키워서는 안 됩니다.

 

루돌프 사슴처럼 생긴 이 순록을 이곳 사람들은 차라고 부릅니다. 차탕이라는 말은 차를 타는 사람들, 순록을 타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한번 옮기는 거리는 20여 킬로미터. 산 골짜기 깊은 숲속에서 살 때는 키우는 순록이 이동 수단의 전부였습니다. 순록은 높은 산의 혹독한 추위에도 강할 뿐만 아니라, 비탈진 곳에서도 잘 다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차탕족들이 외부와의 교류를 위해 평지 가까이 살게 되면서 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새로 자리를 잡으면 남자들은 오르츠를 짓기 위해 나무부터 모읍니다. 나무 세 그루를 묶어 쓰러지지 않게 세운 뒤 무게 중심을 맞추며 기둥을 더합니다.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사슴 뿔로 만든 장식품으로 멋을 부리면 20일 정도 머물 오르츠가 완성됩니다.

 

<인터뷰> 덜저트(50세) : "새로 자리를 잡으면 우리들은 사슴이 잘 자라라는 뜻에서 이렇게 장식을 합니다."

안에서 장작을 피우면 영하 40 도까지 떨어지는 몽골의 겨울 추위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에룬제야(13세) : "어려서 일어나보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밖에 나갈 수 없을 때도 많았어요. (안 추웠어요?) 별로 안 추웠어요."

 

오르츠를 만들 동안 큰 딸은 식사 준비를 합니다. 올해 23 살인 처게레르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왔습니다. 몽골 정부는차탕족 자녀들을 기숙학교에 보내도록 강제하고, 원할 경우 대학 교육도 무료로 시키는 동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때문에 차탕족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현대적인 옷차림입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이러다가 차탕족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많습니다.

 

<인터뷰> 처게레르(22세) :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차탕족이 그대로 있어야 하고 사슴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삶보다는 따뜻한 건물에서 편하게 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순록은 이들에게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음식의 재료이기도 했습니다. 순록의 젖과 말린 순록 고기, 야생 감자 가루를 이용해 칼국수나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광객들이나 주변 상인들에게 밀가루와 말린 쇠고기 등을 얻어 음식을 만드는 추셉니다. 평지 가까이 살기 시작하면서 순록의 숫자도 줄어들고 야생 감자를 캐는 일도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덜저트 : "딸은 이곳이 아니라 계속 도시에서 살도록 할 겁니다. 여기 있으면 좋은 사람도 못 만나고 배우는 것도 어렵고 부자도 못 됩니다."

 

다른 부족을 두려워한 나머지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을 해온 차탕족. 이같은 족내혼 방식 때문에 유전병이 많았고,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부족의 생존 자체도 장담하기 어려웠던 게 차탕족의 과거입니다.

 

하지만 차탕족 스스로가 외부 세계로 향한 빗장을 열고, 몽골 정부도 동화 정책을 추진하는 지금. 차탕족 사람의 수는 늘 수 있지만, 수만 년 지켜온 고대 인류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몇 년 이내에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생존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생존권의 질과 수준 차이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그나마 미국의 중재로 양측이 참여하는 3자대화가 합의됐다는 최근의 외신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한 가닥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http://news.kbs.co.kr/article/news_world/200701/20070121/12871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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